어제 인터넷 뉴스에서 한국 양양지역 일대의 야산들에 큰불이 나, 낙산사 대웅전이 다 타버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어제는 말 그대로 식목일이자 청명절 즉, 한식이었지요. 우리나라에서 한식은 4대 명절에 속할 정도로 큰 명절이었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버린 형식적인 명절로 남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한식의 의미와 유래를 되새겼다면 어제와 같은 대형 화제를 막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중국에서 한식의 유래와 그 교훈을 민간에서 전래의 형식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한 편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주 오래 전, 중국의 진(晋-춘추 전국시대의 한 나라)나라에 개자추(介子推)라는 아주 청렴한 관리가 있었다. 그는 백성들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부귀영화에는 관심도 없었다. 어느 날, 간신들이 진나라의 왕자 중이(重耳-훗날 진나라의 文公이 됨)를 살해하고 어린 왕자 신생(申生)을 즉위시키려는 음모를 알아낸 후, 개자추는 왕자 중이를 보좌하여 진나라를 떠나 각 지를 유랑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들은 큰 산에서 몇 날 몇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길을 잃게 되었다. 왕자 중이는 더 이상 걸을 힘도 없이 거의 아사할 지경에 처해 있었다. 사실, 이렇게 황량한 벌판에서 먹을 것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왕자 중이는 이미 너덜너덜해진 돗자리에 앉아 절망에 빠져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탄식하였다. “내가 죽는 것은 그리 큰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진나라의 백성들은 어이할꼬...” 개자추는 이 말을 듣고, 왕자 중이가 비록 어려움에 처했어도 백성들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에 탄복하였다.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해 왕자 중이를 보좌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는 이를 꽉 물고 발에 힘을 주어 뒷산의 조용한 곳으로 달려가 자기의 허벅지 살을 한 덩어리 베어 내었다. 그리고 그 길로 달려가 불을 지펴 자기의 허벅지 살코기를 익혀 왕자 중이에게 바쳤다. 왕자 중이는 고기를 받자마자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잠시 후, 왕자 중이는 이상하게 생각하여 개자추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난 고기인가? 또 있느냐?” 개자추는 자신의 한 쪽 바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고기는 저의 허벅지에서 구했습니다. 왕자께서 맛있게 드시니 저의 나머지 한 쪽 허벅지 살코기를 마져다 드리겠습니다.” 왕자 중이는 개자추의 허벅지를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네가 이처럼 극진히 나를 대하다니... 이 은혜는 반드시 갚을 것이다.” 하지만, 개자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당신의 보답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제가 당신에게 바친 저의 충절을 잊지는 말아 주십시오. 당신과 제가 이렇게 외지에서 유랑하며 고생하여 백성들의 고난과 아픔을 깨달았으니, 이후에 백성과 나라를 사랑하는 훌륭한 그리고 청명(淸明)한 군주가 되어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훗날, 왕자 중이는 19년간의 유랑 끝에 결국 간신들을 모두 물리치고 제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왕자 중이는 제후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궁전으로 향하던 도중, 그 동안 유랑 중에 앉았던 너덜해진 돗자리를 집어 던졌다. 이 때, 개자추는 말없이 돗자리를 주워들어 조용히 생각에 잠긴 채 집으로 돌아갔다.
왕자 중이는 왕위에 오른 후, 유랑 기간 동안 자신을 보필했던 신하들을 등용하고 큰상을 내렸다. 하지만 개자추의 존재사실을 잊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신하가 개자추의 공로를 언급하자 중이는 바로 개자추를 떠올리고 마음속으로 미안함을 느꼈다. 중이는 신하를 보내 개자추를 불러오도록 하였다. 하지만 개자추는 응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중이는 직접 개자추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개자추의 집에 도착한 순간, 집에는 벌써 아무도 살지 않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이웃집에 물어보니 개자추는 더 이상 중이를 만나고 싶지 않아, 늙은 어머니를 업고 중이를 피해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중이는 군사들을 풀어 개자추가 들어갔다는 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자추를 찾기는 깊은 바다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다. 이 산을 뒤지면 개자추는 어느새 저 산으로 도망을 갔으며, 저 산을 뒤지면 어느새 이 산으로 도망을 온 것이었다. 어느 날, 한 신하가 중이에게 다음과 같은 꾀를 내어 개자추를 찾게 하였다. “산의 한 면만 남겨두고 사방에 불을 지르면, 개자추가 스스로 나올 것입니다.” 중이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하게끔 명령을 내렸다. 드디어 큰 산이 불에 타기 시작했다. 물론 산의 한 면을 남겨 두었지만, 결국 산이 다 타고 난 후에도 개자추는 나오지 않았다. 중이는 사람을 시켜 산을 살펴보게 하였다. 결국, 중이는 다 타버린 버드나무 밑에서 개자추와 그의 노모를 발견하였다. 다 타버린 그들의 시체를 보고, 중이는 후회하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일...
중이는 개자추와 그의 노모를 정성스레 다 타버린 버드나무 밑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이 날 불 지피는 것을 금지하고, 한식(즉, 찬 음식을 먹는 날)으로 정하였다.
그 다음 해, 중이는 신하들을 이끌고 개자추가 죽음을 당한 산으로 가, 먼저 한식(찬 음식을 먹음)을 한 후에 제사를 지내주었다. 그 때 개자추의 무덤 앞에 이미 타 죽은 지 오래된 버드나무의 새싹이 돋아나며 살아나고 있었다. 중이는 마치 개자추가 살아난 듯 감동을 하며, 버드나무 가지 하나를 조심스레 꺾어 머리에 꽂았다.
이때부터 신하들과 백성들은 군주의 행동을 따라하며, 매년 이 날이 되면 버드나무 가지를 머리에 꽂고, 그 날 하루 한식을 하며 성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날을 개자추의 말을 빌어 “청명절”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풍습이 지금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중국 하남성 일대)
위의 이야기를 보면, 화창한 청명절의 유래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네요. 이처럼 슬픈 유래를 가지게 된 한식날, 정말로 불조심을 하지 않으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답니다. 여러분, 보고 또 보고... 드라마의 제목이 아닙니다. 정말 불조심 합시다!














